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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푸트니크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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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푸트니크 계획은 소련이 1957년부터 시작한 일련의 우주 개발 프로그램으로,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미국과의 우주 개발 경쟁을 벌였다. 스푸트니크 1호는 최초의 인공위성이자 스푸트니크 계획의 시작을 알렸으며, 스푸트니크 2호는 최초로 생명체인 개 라이카를 우주로 보냈다. 스푸트니크 계획은 미국에 '스푸트니크 쇼크'를 야기하여 교육, 군사, 과학 기술 분야의 개혁을 촉진하고, NASA 설립과 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지는 등 냉전 시대의 우주 개발 경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스푸트니크 시리즈

"스푸트니크"는 러시아어로 "위성"을 의미한다. 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10월 4일에 발사된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스푸트니크 2호는 최초로 살아있는 동물(개 라이카)을 궤도에 올린 우주선으로 1957년 11월 3일에 발사되었다. 스푸트니크 3호는 연구 위성으로 1958년 5월 15일에 발사되었다.

"스푸트니크"라는 단어는 스푸트니크 계획과 무관한 다른 위성 및 우주선의 이름에도 사용되었다.


  •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스푸트니크 (Днепропетровск Спутник, Dnepropetrovsk Sputnik): 과학 및 기술 개발 위성
  • 이스트레비텔 스푸트니코프 (Истребитель Спутников, Istrebitel Sputnik): "위성 파괴자", 대위성 무기 및 표적
  • 탸젤리 스푸트니크 (Тяжелый Спутник, Tyazhely Sputnik): "중위성", 실패한 금성 탐사선
  •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 (Управляемый Спутник, Upravlyaemyj Sputnik): "제어 가능한 위성", 해양 감시 및 미사일 탐지 위성
  • US-A: 핵 동력 해양 레이더 감시 위성
  • US-K: 몰니야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
  • US-KS: 정지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
  • US-KMO: 현대화된 정지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
  • US-P: 전자 해양 감시 위성
  • US-PM: 현대화된 전자 해양 감시 위성


다음은 공식 소련 명칭으로 나열된 스푸트니크 시리즈이다.

명칭다른 명칭
스푸트니크 4호코라블-스푸트니크 1호
스푸트니크 5호코라블-스푸트니크 2호
스푸트니크 6호코라블 스푸트니크 3호
스푸트니크 7호탸젤리 스푸트니크
스푸트니크 8호베네라 1호
스푸트니크 9호코라블 스푸트니크 4호
스푸트니크 10호코라블 스푸트니크 5호
스푸트니크 11호코스모스 1호
스푸트니크 12호코스모스 2호
스푸트니크 13호코스모스 3호
스푸트니크 14호코스모스 4호
스푸트니크 15호코스모스 5호
스푸트니크 16호코스모스 6호
스푸트니크 17호코스모스 7호
스푸트니크 18호코스모스 8호
스푸트니크 19호
스푸트니크 20호
스푸트니크 21호
스푸트니크 22호
스푸트니크 23호마르스 1호
스푸트니크 24호
스푸트니크 25호루나 E-6 No.2
스푸트니크 40
스푸트니크 41
스푸트니크 99


  • 콜라브리 스푸트니크
  • DS (인공위성)

  • US-A (서방 국가에서는 RORSAT라고 불림)

2. 1. 스푸트니크 1호

'''스푸트니크 1호'''는 1957년 10월 4일에 발사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다. 스푸트니크는 러시아어로 '어린 동반자'라는 뜻이다. 무게는 83.6kg, 지름 58cm의 알루미늄제 구형이며 4개의 안테나가 한 방향으로 붙어 있었다. 스푸트니크 1호의 근지점은 약 228km, 원지점은 약 947km였다.[2] 궤도 경사각은 65°의 타원 궤도이며, 궤도 주기는 96.2분이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소련의 바이코누르 우주 기지에서 R-7 로켓[3] 의해 발사되었다. 이는 러시아 우주계획의 선구자인 콘스탄틴 치올콥스키의 탄생 100주년과 국제 지구 관측년(1957년 7월 1일∼1958년 12월 31일) 기간에 맞춘 것이었다.

위성 본체는 20.05MHz와 40.02MHz 짜리 2개의 송신기(출력 1W)를 탑재하여, 위성의 온도 정보를 0.3초마다 발신했다. 이 전파는 지구를 향해 비프 시그널을 보냈으며, 세계 각국에서 수신되었다. 이 전파의 발신으로 전리층을 관측하기도 했다.

소련은 스푸트니크에 지구에서 인구가 가장 조밀한 지역 위로 낮게 발사될 수 있도록 궤도와 궤적을 주어, 성능 좋은 망원경만 있으면 지구에서도 때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스푸트니크 1호는 발사 57일 후(그 이듬해 1월 4일[2]) 대기권에 재돌입하여 불에 타 사라졌다.

2. 2. 스푸트니크 2호

1957년 11월 3일, 스푸트니크 1호 발사 한 달 뒤에 스푸트니크 2호가 발사되었다. 스푸트니크 2호는 생물을 우주로 데려가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밀폐된 탑승실이 제공되었다. 본체의 무게는 스푸트니크 1호와 비교하여 약 6배, 미국의 익스플로러 1호에 비해 36배나 무거운 508kg이었다. 라이카라는 이름의 암컷 강아지가 탑승하여, 우주공간에서의 생명 반응에 대한 정보를 보내올 수 있었다. 라이카는 인류에 앞서 우주를 여행한 최초의 생물이 되었다.[4] 그러나 당시의 기술로는 지구 귀환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이 우주견은 우주여행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5] 라이카는 안락사되었다고 공표되었으나, 1999년에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기체 과열로 인하여 죽은 것으로 밝혀졌다.[6] 스푸트니크 2호는 1958년 8월 14일 대기권으로 재진입하면서 공기와 접촉하여 불타버렸다.

2. 3. 스푸트니크 3호

스푸트니크 3호


'''스푸트니크 3호'''는 1958년 2월 3일 발사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3개월 후인 5월 15일 발사에 성공하였다. 무게는 약 1327kg였다. 지구 물리학 연구를 위한 계측기를 탑재하였으나, 녹음기 고장으로 밴 앨런대 측정은 실패로 끝났다.

3. 스푸트니크라는 명칭이 사용된 기타 우주선

"위성"을 뜻하는 러시아어 '스푸트니크'는 스푸트니크 계획과 관련 없는 다른 위성이나 우주선에도 사용되었다.

공식 소련 명칭으로 스푸트니크 4호부터 25호까지는 다음과 같다.

스푸트니크공식 명칭
스푸트니크 4호코라블-스푸트니크 1호
스푸트니크 5호코라블-스푸트니크 2호
스푸트니크 6호코라블-스푸트니크 3호
스푸트니크 7호탸졸리 스푸트니크
스푸트니크 8호베네라 1호
스푸트니크 9호코라블-스푸트니크 4호
스푸트니크 10호코라블-스푸트니크 5호
스푸트니크 11호코스모스 1호
스푸트니크 12호코스모스 2호
스푸트니크 13호코스모스 3호
스푸트니크 14호코스모스 4호
스푸트니크 15호코스모스 5호
스푸트니크 16호코스모스 6호
스푸트니크 17호코스모스 7호
스푸트니크 18호코스모스 8호
스푸트니크 19호베네라 2MV-1 No.1
스푸트니크 20호베네라 2MV-1 No.2
스푸트니크 21호베네라 2MV-2 No.1
스푸트니크 22호마르스 2MV-4 No.1
스푸트니크 23호마르스 1호
스푸트니크 24호마르스 2MV-3 No.1
스푸트니크 25호루나 E-6 No.2


3. 1. 코라블-스푸트니크 시리즈


  • 스푸트니크 4호 (코라블-스푸트니크 1호): 1960년 5월 15일 발사.
  • 스푸트니크 5호 (코라블-스푸트니크 2호): 1960년 8월 19일 발사. 개 2마리, 생쥐 40마리, 들쥐 2마리, 기타 여러 식물을 싣고 발사되었으며, 다음날 무사히 귀환.
  • 스푸트니크 6호 (코라블-스푸트니크 3호): 1960년 12월 2일 발사. 개 두 마리가 실려 있었으나, 귀환 도중 사망.
  • 스푸트니크 9호 (코라블-스푸트니크 4호): 1961년 3월 9일 발사. 개 한 마리, 쥐, 기니아 피그를 싣고 한 궤도를 돈 후 성공적으로 귀환.
  • 스푸트니크 10호 (코라블-스푸트니크 5호): 1961년 3월 25일 발사. 개 한 마리, TV 시스템, 과학 장비를 싣고 한 궤도를 돈 후 무사히 귀환. 유인 우주선 발사 전 마지막 시험 비행.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보스토크 1호에 탑승.

3. 2. 베네라, 마르스, 코스모스 시리즈


  • 코라블-스푸트니크 1호(스푸트니크 4호)는 1960년 5월 15일 발사되었다.
  • 코라블-스푸트니크 2호(스푸트니크 5호)는 1960년 8월 19일 발사되었다. 이 우주선에는 개 2마리, 생쥐 40마리, 들쥐 2마리, 그리고 여러 식물이 실려 있었다. 다음날 우주선은 귀환하였고 동물들은 모두 무사히 돌아왔다.
  • 코라블-스푸트니크 3호(스푸트니크 6호)는 1960년 12월 2일 발사되었다. 이 우주선에도 개 두 마리가 실려 있었으나, 이들은 안타깝게도 생존하지 못했다.
  • 탸졸리 스푸트니크(스푸트니크 7호)는 1961년 2월 4일 발사되었으나, 금성 궤도로 진입하는데 실패하였다.
  • 베네라 1호(스푸트니크 8호)는 1961년 2월 12일 발사되었다.
  • 코라블-스푸트니크 4호(스푸트니크 9호)는 1961년 3월 9일 발사되었다. 개 한 마리, 쥐, 그리고 기니아 피그가 탑승했으며, 한 궤도를 도는 동안의 비행 후 성공적으로 귀환하였다.
  • 코라블-스푸트니크 5호(스푸트니크 10호)는 1961년 3월 25일 발사되었다. 개 한 마리와 TV 시스템, 여러 과학 장비들이 실려 있었으며, 한 궤도를 돈 후 무사히 귀환하였다. 이는 유인 우주선 발사 전 마지막 선구 비행이었으며, 이후 196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보스토크 1호에 탑승하여 최초의 우주 비행을 하게 된다.
  • 스푸트니크 11호 ~ 18호는 코스모스 1호 ~ 코스모스 8호로 명명되었다.
  • 스푸트니크 19호 ~ 21호는 베네라 2MV-1 No.1, 베네라 2MV-1 No.2, 베네라 2MV-2 No.1로 명명되었다.
  • 스푸트니크 22호, 24호는 각각 마르스 2MV-4 No.1, 마르스 2MV-3 No.1로 명명되었다.
  • 스푸트니크 23호는 마르스 1호로 명명되었다.
  • 스푸트니크 25호는 루나 E-6 No.2로 명명되었다.

3. 3.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스푸트니크 (DS)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스푸트니크(Днепропетровск Спутник, Dnepropetrovsk Sputnik)는 일련의 과학 및 기술 개발 위성이다.[1]

3. 4. 이스트레비텔 스푸트니코프 (IS)

이스트레비텔 스푸트니코프는 "위성 파괴자"를 뜻하며, 일련의 대위성 무기 및 표적을 의미한다.[1]

Истребитель Спутников|이스트레비텔 스푸트니코프ru는 러시아어로 "위성 파괴자"를 의미하며, 스푸트니크 계획과 무관한 위성·우주선에 IS라는 이름을 포함하는 경우가 있다.[1]

3. 5.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 (US)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Управляемый Спутник)는 "제어 가능한 위성"이라는 뜻으로, 해양 감시 및 미사일 탐지 위성 계열을 가리킨다. 이 계열에는 다음과 같은 위성들이 있다.[1]

  • US-A: 핵 동력 해양 레이더 감시 위성 (서방 국가에서는 RORSAT으로 알려짐)
  • US-K: 몰니야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
  • US-KS: 정지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
  • US-KMO: 현대화된 정지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
  • US-P: 전자 해양 감시 위성
  • US-PM: 현대화된 전자 해양 감시 위성

3. 5. 1. US-A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는 "제어 가능한 위성"이라는 뜻으로, 해양 감시 및 미사일 탐지 위성 계열이다. US-A는 이 계열의 핵 동력 해양 레이더 감시 위성을 가리키며, 서방 국가에서는 RORSAT으로 알려져 있다.[1]

3. 5. 2. US-K

몰니야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이다.[1]

3. 5. 3. US-KS

US-KS는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Управляемый Спутник) 계열의 정지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으로, "제어 가능한 위성"을 뜻한다.

3. 5. 4. US-KMO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 "제어 가능한 위성") 계열의 현대화된 정지 궤도 미사일 탐지 위성이다.

3. 5. 5. US-P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Управляемый Спутник, "제어 가능한 위성") 계열의 해양 감시 및 미사일 탐지 위성 중 하나이다. US-P는 전자 해양 감시 위성이었다.[1]

3. 5. 6. US-PM

US-PM은 우프라블야예미 스푸트니크(Управляемый Спутник, "제어 가능한 위성") 계열의 현대화된 전자 해양 감시 위성이다.

4. 스푸트니크 충격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를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불렀다.[1] 당시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 체계와 과학 기술 전반에서 자신들이 앞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교육, 군사, 과학 기술 부문의 개혁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4. 1. 교육 분야의 변화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은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를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불렀다. 미국은 이 사건을 계기로 교육, 군사, 과학 기술 부문의 개혁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는 소련에 비해 뒤처진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했다.

1950년대 쾨르너, 베스토 등의 교육학자들은 미국의 경험중심 교육과정을 비판하며, 소련의 우주 과학 기술에 비해 미국의 기술이 뒤처지게 된 원인을 교육에서 찾고자 하였다.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학생들의 흥미와 필요를 중시하여 학습 동기를 높이고 실제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학습을 제공했지만, 학문적 기초와 체계적인 지식 습득에는 소홀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학문중심 교육과정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은 각 학문의 기본 개념과 지식 구조를 중심으로 교육 내용을 구성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원리를 발견하고 탐구하는 학습 방법을 강조했다. 이러한 변화는 1960년 제롬 브루너의 저서 『교육의 과정』에 의해 더욱 확산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4. 2. 군사 및 우주 개발 경쟁

소련의 위성 발사 성공은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를 "스푸트니크 충격"이라고 불렀다. 당시 미국은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 체계와 과학 기술 전반에서 자신들이 앞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 미국은 교육, 군사, 과학 기술 부문의 개혁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1]

195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설립되었고, 같은 해 1월 31일 주노 1호 로켓을 이용하여 무게 14kg(소련의 1/6 수준)의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였다.[1]

스푸트니크 충격으로 인해 미국은 과학 기술 분야에서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는 인식이 뒤집혔다. 그 영향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설립되어 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졌다. 미국 육군1958년 1월 31일에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했고, 1961년 아폴로 계획을 시작하여 체계적인 우주 개발에 나섰으며, 1969년 인터넷의 모태가 된 아르파넷 구축으로 이어졌다.[2]

소련은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 매우 짧은 기간 내에 연이어 2호, 3호를 발사했다. 당시 미국의 항공 우주 기술은 초기 단계였으며, 미국의 첫 인공위성은 1958년 1월 31일에 발사된 익스플로러 1호였다. 1958년 7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NACA를 NASA로 개편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NASA는 우주 개발에 집중하고 군 시설 이용 권한과 예산 지원을 받았다. 그해 10월에 NASA는 인간을 우주에 보내는 ‘머큐리 계획’을 세웠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당선으로 머큐리 계획은 제미니 계획아폴로 계획으로 이어졌다. 1961년 5월 5일 미국은 유인 우주선 머큐리 1호를 발사했지만, 소련은 이미 4월 12일에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를 발사했다. 1975년 아폴로 18호와 소유스 19호의 도킹 전까지 미국과 소련은 막대한 금액을 우주 경쟁에 투입했다.[3]

스푸트니크 사건 이후 미국 내에서 소련에 대한 방위 능력 불안감이 커졌다. 스푸트니크는 소련이 미국 본토까지 도달 가능한 강력한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증거였다. 아이젠하워는 포드 재단의 게이서가 이끄는 특별 위원회를 구성하여 미국의 안보 필요성을 연구했다. ‘게이서 보고서’는 미국이 방위비 지출을 크게 늘리지 않으면 냉전에서 패배할 수 있으며, 방위비 지출이 고용 촉진과 경기 후퇴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 내용이 언론에 유출되자 여론은 군사력 증강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U-2기 정찰을 통해 소련의 위협이 허세임을 알고 군사 예산 증대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았다.[4]

4. 3. 대한민국에 미친 영향

스푸트니크 쇼크는 대한민국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미국의 과학 기술 정책 변화는 한국의 과학 기술 발전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참조

[1] 문서 NOTE
[2] 서적 히스토리아 2003
[3] 문서
[4] 문서
[5] 서적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2004
[6] 웹인용 The True Story of Laika the Dog http://www.space.com[...] 1999-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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